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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유류와 평원

울란바토르의 밤


공항버스를 타기 직전까지 짐을 쌌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여행이기에 웬만한 것은 어머니가 다 챙겼다. 옷과 칫솔, 생리가 다 끝나지 않아서 마이데이 비데, 탐폰을 마지막으로 넣었다. 단촐한 짐이었지만 혹시 몰라 챙긴 긴 두꺼운 과잠바가 캐리어 반을 차지했다. 그래도 겨울에는 춥다고 했으니까...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총 여행 중에서 제일 고통스러웠다. 네이버 지도보다 버스는 십분인가, 이십 분이 늦게 왔고 나는 태양 밑에서 열심히 익어갔다. 짜증나...여름 짜증나..죽여...공항버스가 오자마자 탔다. 저녁 비행기를 탄 건 처음이라 몸이 쌩쌩했다. 평소라면 밤을 새서 버스부터 자고 가는데 잠도 잘잤겠다...열심히 휴대폰으로 트위터 인터넷 카톡 노래 듣기를 하며 갔다. 인천 공항으로 가는 길에 이상한 갯벌 같은 게 있는데 그때부터 커튼을 열어 창밖을 쳐다보았다. 


연락하던 친구는 - 몇 년전에 같이 해외여행을 갔던 - 공항 가는 길에 있는 이 뻘인지 뭐인지 모르는 공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몇 달전에도 이 곳을 지났을 텐데 나는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나에게 별로 인상적인 풍경은 아니었나보다. 정말 기억은 다르게 적힌다...


어머니의 차는 길을 잃은 기사 때문에 한시간에서 두시간이 지연되고 있었다. 공항버스가 한시간이 넘게 늦다니. 너무 대단한 기사였다...그 덕분에 엄마와 나의 도착시간은 얼추 비슷해질 수 있었다. 대한항공을 탔기 때문에 2터미널에 처음으로 가보았다. 1터미널 옆에 있는 것같은데 버스로 한참 달렸다. 버스로 가는 길만 이렇게 먼가? 아니면 터미널을 잘못 내린 사람은 좆되는 거다...환승하는데 터미널을 잘못 찾았다고 생각해봐. 이십분은 날려야할 거 같았다. 2터미널은 한산했다. 대한항공 델타항공 그 외 어쩌구 4-5 항공사들만 이 곳에서 취항을 하기 때문에. 


점심을 굶어서 배가 고팠다. 두리번거리다 올리브영에서 치실을 사고 - 이럴 줄 알았으면 점심에 올리브영 다녀오지 않는 건데...작은 후회를 했다 - 이유는 모르겠지만 승무원들이 몰려있는 분식점에 갔다. 만 원 넘게 돈을 주며 공항에서 먹고 싶지 않기도 했고...천오백원짜리 김밥을 시켜먹었다. 맛있진 않았고 그냥 그랬다. 천오백원치 허기를 채운 느낌. 밥을 먹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왔다. 거대한 캐리어와 함께...


내 캐리어는 8키로 엄마 캐리어는 19키로...엄마만한 캐리어를 대신 들었다. 대체 이걸 고향에서부터 어떻게 끌고 온거지. 힘도 없고 작은 엄마가...나란히 서서 짐을 부쳤다. 캐리어에 보조배터리를 다섯개는 넣은 엄마때문에 직원 앞에서 열심히 보조배터리를 꺼냈지만...어쨌거나 출국심사는 순조롭게 이뤄졌다. 


제 2 터미널이 좋다고 엄마는 열심히 말하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면세품을 찾는 시간과 담배를 사고 싶다는 욕망과 선글라스를 장만해야할까 하는 고민을 하며 2터미널을 돌았다. 로봇도 보았다. 말하는 인천공항 로봇. 4차혁명의 산실...


친구에게 중얼거리며 담배를 사고 엉겹결에 선글라스도 긁고 면세품도 찾았다. 시계줄이 맞지 않아 마음이 아팠지만 시계는 완전 예뻤다. 빨리 줄 갈아서 차고 다녀야지. 몽골로 가는 톨게이트에 있는 사람들은 확실히 편한 차림이었다. 몽골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무리지어 다니는 젊은이들. 아마 러브몽골에서 투어 인원을 구했겠지. 


비행은 난리였다. 다른 게 아니라 폭풍우 속을 지나서...기내식을 먹는데 물이 날아갔다. 미국 여행 갈 때 찰랑이던 물이 최대 터뷸런스인 줄 알았는데 이번이 넘어섰다. 롤러코스터를 네 번은 탄 기분. 밑빠지는 느낌이 소름 돋으면서도 아주 조금 재미있었다. 밥먹을 때가 아니면 더 좋았겠지만. 엄마는 난리에 식사를 다 끝낸 건 우리 뿐이라며 강조했다. 잘먹고 잘싸는 두 명...


비행기 차창 너머로 별을 봤다. 밤 비행은 이런 매력이 있구나. 가까이 떠 있는 별을 보다 노래를 듣다보니 어느새 울란바토르 하늘 위에 있었다. 작은 도시일 줄 알았는데 불빛이 수없이 반짝거렸다. ulranbataar 였던가 a가 두 개 있어서 인상적인 도시. 이후에 알았지만 공장 굴뚝이 비행기에서 보니 예뻤다. 이슬람 사원인 줄 알았다. 몽골을 주로 티베트 불교를 믿지만...비행기 위에서는 딱히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으므로...


칭기스칸 공항은 일 층이었다. 일 층이고 짐나오는 곳도 한 곳이고. 입국 심사는 간단했다. 무뚝뚝해보이는 몽골 직원 앞에 서면 끝. 물어보는 것도 없었다. 보통 외국인/자국민 줄을 따로 세우는 데 이 곳은 입국 심사 줄이 밀린다 싶으니까 자국민 심사 받는 곳에도 우리를 세웠다. 합리적이지마 웃긴 몽골 방식...어디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짐 나오는 곳이 한 곳이었기에 헷갈릴 일도 없었다. 티베트 승려를 보며 짐을 찾았다. 모든 짐이 나오자 돌아가던 레일이 멈췄다. 짐을 다 내보냈으니 레일이 돌 필요는 없지만...내가 직접 가서 짐을 찾아오는 서비스도 처음이었기에 약간의 황당함에 깔깔대며 나왔다. 탐앤탐스...아무래도 짭인 거 같은 탐앤타스-로고가 미묘하게 다르다..- 앞에서 우리의 여행을 책임질 가이드 바츠카를 만났다. 서로를 힐끔대다가...아...바츠카...아 안녕하세요...의 시간. 바츠카는 멀끔한 셔츠와 슬랙스를 걸치고 있었다. 방금 퇴근한 사람 같았다. 공항을 나오자 추웠다. 반팔과 반바지는 몽골의 밤을 절대 버틸 수 없는 차림이었다. 가을에서 초겨울 바람이 불었다. 후덥지근한 여름의 한국에서 바로 가을로 넘어왔다. 시린 팔을 쓸며 -한국의 8월에서 절대 쓸 수 없는 말이다 - 차에 탔다. 공항이 일 층인 것도, 탄 차가 벤인 것도 모로코 생각이 났다. 창문을 열자 서늘한 바람에 쏟아졌다. 마트로 가는 길에 모래 바람이 폭풍처럼 불었다. 가이드분과 함께 몽골의 끝내주는 날씨 - 또한 한국의 지옥같은 날씨 - 에 대해 대화하며 밤길을 달렸다. 


울란바토르의 아파트는 사각 상자 같았다. 키릴어가 적힌 간판을 보자 모스크바가 떠올랐다. 러시아어를 쓰는 건 아니고 문자만 빌려와서 쓴다고 한다. 신기했다. 몽골 전통 문자는 또 따로 있다고. 알파벳을 빌려와 중국어 병음 기호로 쓰는 것처럼 키릴어를 쓰는 건가? 이제와서 궁금해지는...


마트는 이마트 같았다. 조명이 미묘하게 어두웠지만. 바츠카의 추천을 받아 맥주를 샀다. 아이스크림도 샀다. 주영씨가 아침으로 할 주스와 빵을 사서 건네주었다. 아이스크림을 언제 먹어야할 지 몰라서 가만히 들고 있었다. 뭔가 과자가 후두둑 떨어질 거 같은 아이스크림이었기에...


아이스크림은 내 손의 온도에 슬슬 녹기 시작하고 차는 몽골 시내를 달렸다. 외곽이라고 해야하나? 라마다 호텔 인근이었다. 내가 길을 찾고 다닌 게 아니지만 몽골 시내가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닌 거 같다. 차를 타고 돌아다닐 때마다 익숙해진 거리가 나타났으므로...


가라오케가 많았다. karaoke...보통 24시간. 몽골 사람도 잠을 잘 안자나? 가게들도 24시가 많았다. 우리나라처럼 편의점 브랜드가 있는 게 아니라 아파트 밑 수퍼가 편의점을 대신하는 느낌이었다. 보수가 안되어있는 곳이 많고 샷시도 추가 선택인지 샷시를 한 곳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낙후한 소련 도시를 보는 느낌. 모스크바와 건축양식이 많이 비슷해서 그런가 - 이후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몽골도 소련의 위성국가였다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역사가 있다니...그 사실을 알고 난 후에 더 몽골이 좋아졌다. 그래서 낫과 별도 많았구나.- 차는 시골모텔같은 숙소 앞에 섰다. 밑에는 역시 가라오케가 있었다. 이 곳은 바와 가라오케가 호텔의 필수요소인 걸까. 가이드님이 짐을 손수 들어 옮겨 주었다. 어머니의 20키로 캐리어를 번쩍번쩍 드는..몽골남자. 


엘레베이터가 정말 좁았다. 두 명이서 서 있으면 로맨스 영화를 강제로 찍을 수 있는 엘레베이터. 방에 들어가자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정말 큰 객실. 더블 침대 두 개. 그리고 침침한 조명. 처음에는 조명을 다 켠 건지 헷갈려서 몇 번이나 스위치 앞을 왔다갔다 했지만 모두 켜진 거였다. 창문에는 방충망이 없었고 화장실에서는 왕파리가 몇 마리 돌아다녔다. 방에서는 묘하게 냄새가 났는데 담배냄새라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몽골 고기냄새도 아니고 퀴퀴한 냄새도 아닌...방충망 없는 창문을 열자 공사장과 아파트가 보였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나름대로 어매니티가 있었다. 일회용과 다회용 어매니티(이러면 어매니티라고 부를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가 섞여있는 게 재미있었다...- 맥주를 마셨다. 몽골 맥주. 맛있는 건 잘 모르겠다...우리나라 맥주랑 비슷한 맛. 바츠카의 추천으로 산 초콜렛은 맛있었고 아주 달았다. 어머니는 우리의 조식을 보고 한참 웃었다. 많은 빵과 주스. 


"나는 빵과 주스라길래 숙소에서 제공해주는 줄 알았어. 너무 재밌어."


정말 충격과 재미, 황당함이 함께였는지 아침까지 저 말을 네 번정도 들었다...


피로때문인지 맥주가 금방 돌아서-500ml 두개여서 양이 많기도 했다- 한 병 반을 마시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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